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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과 세미라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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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겸 댓글 0건 조회 160회 작성일 24-09-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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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바알)과 세미라미스(아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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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iel ・ 2016. 4. 1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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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용어와 현재 사용되는 용어가 다소 달라서, 성경과 이 시대의 징조를 매치시키는데 어려움을 간혹 느끼게 됩니다. 연결시켜서 공부합시다. ㅎ

니므롯에 관하여

 

A. 니므롯의 족보:

 


 


 ① 노아 → ② 함 → ③ 구스 → ④ 니므롯

니므롯은 노아의 4대 손자이다. 그리고, 구스의 6번째 아들로 출생했다(창10:7-8).

 

B. 니므롯의 야망:


1. 지도자가 된 니므롯:

노아 방주가 머무른 곳은, 해발 5165m의 아라랏 산맥의 어느 산 봉우리였다. 그러나, 물 수압이 내려가면서 방주도 물이 빠지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땅 아래로 내려와 물이 얕은 땅위에 머물었다. 땅이 마르자 노아는, 온 가족과 함께 방주에서 나왔다. 방주에서 내린 땅은, 바로 아라랏 산맥 밑 농경지로 접합한 땅이었다. 노아는 그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방주를 거처로 삼고 세 아들과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지으며 인구를 번식 시켰다.

 

그 후, 350년이란 세월이 흘러 노아는 950세에 죽었다(창9:28-29). 한 민족의 지도자인 노아가 죽자 함의 손자 니므롯이 일어나, 사람들을 선동하여 아라랏 산맥을 등지고 팔레스탄이 있는 동쪽 방향을 향해 이주하기 시작하였다(창11:2). 그들은, 왜 정든 고향 땅과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이곳은, 농경사회의 정착민으로 살아가는 데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아, 삶의 조건이 만족스러운 곳을 찾아 나섰는지 모른다. 어쨌든 니므롯은, 사람들을 모아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다(창11:2). 장차 메소포타미아라 혹은 바벨론이라 부르게될 이 시날 평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으로 하여금 충분한 곡물을 생산 할 수 있도록 비옥한 퇴적물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초생달 모양의 비옥한 옥토는, 페르시아만 입구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과 하란을 거쳐 팔레스탄 지역까지 넓게 뻗어 있다. 그러므로 시날 평지는, 앞전의 아라랏 산맥 밑 평지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니므롯의 지도력은, 민족을 대이동시켜 비옥한 토지를 만나게 해 준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시날 땅에는, 수많은 들짐승들이 사람들을 습격하여 거주민의 안전과 평화에 위협을 주었다(출23:29-30참고).

 

이것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아라랏 산밑에서 350년 동안 인구를 번식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 인적이 없었던 시날 평지에는 수많은 짐승 떼들이 번식했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니므롯은, 유능한 사냥 기술로 거주민들을 야생 동물로부터 지켜주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아 고대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英傑)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10:8, 9).

 

본문을 토대로 니므롯을 살펴보면 타인이 갖지 못한 특이(特異)한 재주와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고, 장부의 대쪽같은 기개와 풍체와 용모가 뛰어난 호걸(豪傑)이었으며, 남이 상상도 못할 기발한 아이디어를 소유한 당대의 영웅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니므롯의 야망(野望)은 너무 커서, 사람들에게서 명성을 얻고 갈채를 받은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국가를 건설하여 그들의 왕이 되어 마음껏 권력을 휘둘러보고 싶었다.

 

2. 인류 최초의 바벨론 제국:

여기서 성이란 (이르: 성읍. 도시. 궁전) 등을 말한다. 대란 (미그달: 망대. 피라밋 모양의 강단)을 말한다. 니므롯의 지도하에 모든 도시들과 성읍들이 건설되었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 그의 나라(왕국)는 시날 땅의 바벨론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 ] (창10:10). 도시들이 건설된 다음, 왕궁을 건축하여 이 도시들을 하나의 국가로 조직화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당당하게 왕이 되었다. 이것은, 니므롯이 시날 땅에 처음으로 세운 바벨론 왕국이었다. 이러한 도시들과 성읍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살게 된 것이다.

 

C. 성과 대 건설 목적:

 

<성>은 


(이르: 성읍. 도시. 궁전>를 말하며- <대>는 


(미그달 : 망대. 피라밋 모양의 신전(神殿)탑>을 말한다. 이것으로 봐서는 니므롯을 중심으로 많은 성읍과 도시들이 건설되고 - 니므롯의 왕궁도 건축되었음을 말한다(창10:10참조). 그리고 <대>는 피라밋 모양의 신전탑을 말한다. 특이한 사냥기술로 민족의 지도자가된 니므롯을 중심으로 많은 성읍들과 도시들이 건설되었고 -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왕이 된 니므롯은 모든 사람들이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방주에서 나온 노아를 향하여 [ 생육하고 번식하여 땅에 충만하라 ]고 명령하셨다(창9:1.7). 그러므로, 사람들은 생육의 속도에 맞추어 사방으로 흩어져 땅에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도 니므롯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백성들을 인도해 갔다.

 

과학적 자료에 의하면, 이 바벨탑은 단순한 탑이 아니라 지그랏이라 불리는 제단의 일종이며, 월신(月神)인 나나를 피라밋 탑 꼭대기에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것은 분명 니므롯을 중심으로 한 배교운동을 말하고 있다. 노아가 죽은 후 많은 세월이 흐르자 당시 기독교인들은 신앙회의를 느꼈고 - 야수들의 습격으로부터 생명과 신변을 지켜 준 니므롯의 통치력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했고- 민족의 지도자가 된 니므롯은 교만해 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니므롯을 따르기 시작했고- 인간신으로 추앙되면서 - 당시 기독교인들까지 배교운동을 하기 시작하여 우상종교와 통합되기 시작했고 - 진실한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다시 노아의 때가 반복된 것이다. 니므롯이 저주받은 함 자손인 것을 보면 - 노아 홍수로 실패를 본 사탄은 니므롯을 통하여 또다시 배교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분명하다.

 

본문에 보면 [ 여호와께서 ---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흩으신고로 성 쌓기를 그쳤더라 ]고 한 것을 보면, 많은 역군들이 동원되어  하늘 높이 솟는 우상제단을 건축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월신인 나나를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월신인 나나 형상은 가장 높은 탑 꼭대기에 만들어 놓았다. 본문에 [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 8절 ]고 한 것을 보면, 나나의 신전인 바벨탑은 거의 완공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신전인 바벨탑을 세운 목적은 종교통합을 통해서 흩어짐을 막고,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였다. 인간들의 사악한 행위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언어혼잡을 통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셨고, 니므롯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D. 니므롯의 이름에 관하여:

니므롯(  


)의 이름의 뜻은 = 반역자. 대적자] 란 뜻이다. 그리고, [ 그가 여호와 앞에서 ] 앞에서(against)란 뜻은, [ ---을 대적하여.---을 거슬려 ] 란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종합하면, 니므롯은 [ 하나님을 대적한 반역자 ]라는 뜻이다. 유대 백과사전에도 [ 니므롯이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케 한 자 ]라고 기록되었다. 다시말하면 니므롯은 당시 네피림과 같은 그 시대의 적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여호아 앞에서 특이한 사녕꾼>이란 말은, 아주 간교하게- 그리고 마귀 루시퍼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들을 사냥했음을 말한다. 사냥꾼의 특징은 인정사정없이 짐승을 잡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니므롯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박해를 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상을 통해서 신앙의 대상을 바꾸라했고 - 거기에 불복종한 자는 가차없이 처단해 버렸으며 - 배신한 기독교인들에게는 군신맹약으로 충성을 강요했다. 

 

E. 니므롯의 그릇된 야망:

[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는 무엇으론가 하나되자는 말이다. 이것은 단일화된 종교를 의미했다.  같은 사상을 소유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반드시 흩어지게 돼 있다. 그래서 니므롯은 최초로 인간중심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 자기들의 이름] 즉 인간의 이름을 높혀 보자고 제의한 것이다. <흩어지지 말자>란 하나가 되자는 것이니 즉 단일화된 정부, 단일화된 종교. 단일화된 경제. 단일화된 군사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이름을 하나님 이름보다 더 높히고 - 하나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받겠다는 뜻이다. 인구가 흩어지지 않아야 정치도, 경제도, 종교도. 군사도 단일화시킬 수 있다. 이것을 성취시켜 주는 힘은 오직 종교의 힘 외에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제일주의로 생각하고 사는 유일신론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는 니므롯의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신앙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자신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보다 더 큰 영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언어(


:따발)도 하나요, 구음(口音)(


: 따발)도 하나였다. 언어와 구음은 똑같이 <따발>이다. 같은 소리- 같은 사상을 말한다.  이것은 니므롯의 계획과 뜻에 박수갈채를 보낸 많은 사람들의 지지도를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니므롯의 제의에 한 사상과 한 뜻으로 한 목소리를 냈다는 뜻이다. 폭군 니므롯은 하나님을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월신 나나를 통해 영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결과 종교통합운동은 모두 한 목소리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니므롯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신실한 신앙인을 박해하는 적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마치 단3장에 느부갓네살이 키다리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저울질해 보듯-니므롯이 피라밋과 같은 신전과 우상을 만든 목적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니므롯의 뜻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경건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욕하고 경멸하도록 하여 순종하지 않으면 처단해버리는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역사가 요세푸스도 기록하기를 [ 니므롯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도록 폭군 정치로 바꾸어 나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욕하고 경멸하도록 격동시켜 나갔다 ]고 기록했으며 또, [ 니므롯은 신전 탑을 세우기 위해 수많은 일군들을 고용하였으며, 군중들은 니므롯의 명령에 따라, 고통도 아끼지 않고 쉴 새 없이 탑을 높이 쌓아갔다. 그들이 탑을 세운 지역을 지금의 바벨론이라 부른다 ] 고 기록하였다.

 

니므롯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가운데, 피라밋 형태의 신전을 쉴 새없이 계속적으로 쌓아 가다가 언어혼잡이란 대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그 후, 백성들은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다가 사방 온 땅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미래에도, 니므롯 같은 적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다. 그 적그리스도는 니므롯이 이루지 못한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 꿈은, 단일화된 정치. 단일화된 경제. 단일화 된 종교. 단일화된 군사인 것이다. 이것을 완성시킨 후에는 [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라 할 것이다(살후 2:4).  단일화된 정치, 단일화된 경제, 단일화된 종교. 단일화된 군사가 눈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사탄은 니므롯을 통하여 거대한 배교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했으나 이제 앞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반드시 잠깐동안 성공할 것이다. 

 

F. 니므롯 부인이 만든 종교:

 

1. 니므롯의 죽음

니므롯의 아내는 세미라미스로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니므롯이 죽자 그 아내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의 몸을 조각 조각 토막을 내서 잘라 가지고 태워서 여러 지역으로 보냈다. 이와 유사한 관행이 성경에도 언급되어 있다(삿19:29; 삼상11:7). 이렇게 한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함이었다. 니므롯의 몸을 받아든 많은 백성들은 니므롯의 죽음을 심히 애도했다고 한다. 

 

2. 세미라미스가 만든 우상종교:

언어혼잡이 있자말자 곧바로 사람들이 흩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건설한 도시들과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벨론의 백성들은,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살다가 니므롯이 죽고,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와 그 아들 담무스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꽤 오래 살다가 흩어졌다.

 

유대 역사에 따르면,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이 죽은 후, 태양神이 되었다고 주장하였고, 그리고  후에 한 아들을 낳아 담무스라 이름하고, 이 아들이 니므롯의 재 탄생이라고 주장하였다. 담무스의 어머니 세미라미스는, [ 메시야가 여자에게서 태어날 것이라 ]는 사실을 구전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미라미스는 아들을 초자연적힘으로 잉태했다고 주장했고, 이 아들이 바로 약속된 후손, 즉 구세주라고 주장하였다.

 

그 후, 세미라미스와 담무스가 죽자, 바벨론 사람들은 세미라미스와 담무스를 신으로 경배하며 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무스와 니므롯은 신비의 상징물로 경배되었다. 예를 들면, 담무스는 금송아지로, 니므롯은 태양상. 물고기. 나무들. 기둥들. 동물들. 바알로 신봉되어 왔다(롬1:21-26). 그리고, 그에게 영예(榮譽)를 돌리고자 촛불과 의식적 불을 붙였다. 이렇게 시작된 바벨론의 우상종교는 인구가 확산되면서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3. 흩어진 후 나타난 우상들:

이 바벨론으로부터 떠나갈 때 그들은 어머니와 어린이에게 경배하는 것과 여러 종류의 신비적 상징들도 같이 가지고 떠나 갔다. 그들이 흩어진 각 나라마다 [ 메시야와 그의 어머니 ]에 대한 신앙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바벨론에서의 세미라미스와 담무스라는 제사관행과 사상은 같지만, 각 지방에서 불러지는 이름이 다양한 것은 언어 혼잡 때문이었다. 중국인들은 어머니 여신을 싱무 혹은 "聖母" 라고 부른다. 이 성모는 아이를 팔에 안고 머리 둘레에 영광의 광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고대 독일인들은 팔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한 처녀 헤르타를 경배 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팔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한 사람을 디사라 불렀다. 에투루리아인들은 그녀를 누트리아라고 불렀고, 드루이드교 단원들은 비르고-파티투라(하나님의 어머니)로써 경배하였다. 인도에서는, 이 여신이 인드라니가 그 아들 쥬피터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맨 밑의 삽화는 어머니 데바키와 아이크리쉬나를 보여 주고 있다.

 

오랫동안 "위대한 여신" 이시와 그녀의 아이 이스와라가 그들을 경배하기 위해 건설된 인도의 사원들에서 경배받아 왔다. 그리스 사람에게는 어머니 여신이 압포디테혹은 케레스로, 수메르 사람에게는 나나(Naan)로, 고대 로마시대는 경배자들에게 비너스 혹은 포튜나라고, 불렀으며 아시아에서는 어머니가 키벨레로 아이가 데오이우스라고 알려졌었다. 그 여신은 바알의 부인인 하늘의 여황으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도에 빠지자 이들 역시 이 어머니 신 경배로 더럽혔다. 사사기 2:13은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니므롯)과 아스다롯(세미라미스)을 섬겼다"고 기록했다(삿10:6; 삼상7:3,4: 12:10; 왕상11:5; 왕하23:13). 이스라엘 가운데 알려진 여신의 호칭 중 하나는 "하늘 여신(황후)"이었다(렘44:17-19).

 

에베소에서는 위대한 어머니가 다이아나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 도시에서 다이아나에게 봉헌된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에베소서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과 세계에서 여신을 경배하였다(행19:27). 이집트에서는 어머니가 이시스와 그 아들 호루스(Horus)라고 알려졌었다. 어머니 이시스를 보여주는 이집트의 종교적 기념비들은 매우 흔하다.

 

이집트의 다산의 여신인 이시스는 별들이 여신 머리 주위에 둘러 쌓여 있으면서 초승달 위에서 있는 것으로 나타내져 있다. 전 유럽의 로마 카톨릭 교회들에서 마리아의 모습이 정확하게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벨론에 근원을 둔 종교적 사상들과 관습들은 다른 이름과 다른 형태로 나타나 경배되다가 로마제국 전역에서 국교화되었다. 위대한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경배는 로마제국 아래서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스페인, 포르트칼, 프랑스, 독일 및 불가리아 등에서 거룩한 영광을 받았다. 페니기아의 다산의 여신인 아스타르테는 고대(古代)메달이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초승달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G. 예수 그리스도 승천 후:

거룩한 어머니에 대한 경배가 매우 두드러졌던 이 기간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신약의 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초기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교회들이었던가 ! 그렇지만3∼4세기쯤에는 사도가 경고한대로 배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1세기 동안에는 마리아에 대한 어떤 강조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카톨릭 백과사전에서도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4세기 초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가서야 마리아를 여신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많은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들어왔을 때, 그들은, 어머니 여신 숭배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여 여신 숭배를 버릴 마음이 없었다. 타협하는 교회지도자들은 만일 기독교에서, 어머니 여신을 경배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교인 수를 크게 늘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알려져 있던 여신 이름 대신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담무스를 예수님으로 대체시켜 경배하도록 허락했던 것이다.

 

트레이스와 아라비아, 그 외 다른 곳은 어떤 사람들이 마리아를 경배하고 그 사당에 빵을 예물로 바친 이런 경배는 교회에서 눈 살을 찌푸리게 했었다(BC.403년). 마리아가 존경을 받을 수는 있지만 누구도 마리아를 숭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마리아 예배는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공식적인 교리로 체택되고 말았다.

 

에베소에서 결정되었다는데 무슨 뜻이라도 있는가? 다이아나를 오래 전부터 동정녀와 어머니 여신으로 경배하여온 바로 그 도시인 것이다. 이 다이아나는 자연계의 생식력을 대표하여 많은 젖가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여신은 머리에 바벨탑의 상징인 탑 모양의 면류관으로 머리를 단장하고 있다. 모든 우상종교의 근원이 바벨론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표이다.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이 신봉하여 온 신조를 버리기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은 더 많은 개종자들을 얻기 위해 이교의 어머니 사상을 마리아로 대체시켰던 것이다(행19:24-27. 행20:17-36참조).

 

사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배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 ]이라고 눈물로 유언했다. 여러 세기 후에 에베소 교회가 타협하여 어머니 여신 예배 형태를 받아들이고 에베소 회의에서 이것을 공식적인 교리로 제정하였으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 바벨론 여신에게 부쳐진 칭호 중 한가지 마리아는 자주 마돈나라고 불리워졌다.

 

신격화된 니므롯은 바알로, 그의 부인의 칭호는 바알티(나의 부인)을 뜻했는데, 라틴어로는 메아 도미나이고, 이탈리아어로는 잘 알려진 마돈나로 변모된 것이다! 카톨릭에서 마리아는 하늘 황후로 불리운다. 이 하늘의 황후는 마리아가 태어나기 여러 세기 전 경배 받은 어머니 여신의 칭호다. 예레미야는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과자를 만들며 "라고 책망했다

(렘7:18-20)  

 

애굽의 이시스에게 부쳐진 칭호 중 한가지는 " 하나님의 어머니 "이었다.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들이 이 같은 칭호를 마리아에게 적용시켰다. 종종 꽃으로 된 틀로 둘러 쌓여 있는 애굽의 이시스와 그 아들 호루스의 옛 초상화는 대중의 의견과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공식적인 승인에 의하여 마리아와 예수님으로 대체시켰다.

 

이렇게 대체시킨 마리아 모자상에는 힌두교와 이집트의 동정녀들 모습과 꼭 같이 왕관을 썼고 보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이렇게 이교주의를 그리스도의 안에 유입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신약 성경이 기록될 때부터 있었다. 바울이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는 중이라고 말하였고 배도하는 일이 임하였고, 어떤 사람은 [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을 것 ] 즉, 이교의 허위교리들을 따를 것이라고 경고한 까닭이다(살후2:3-7. 딤전4:2. 유1:3-4).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박해를 중지하라는 칙령이 전 제국에 선포되자 주교들은 높은 영예를 받게 되고 교회는 세속적인 승인과 권력의 지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교주의와 수많은 타협을 하면서 세상 기관의 한 부분이 되었다. 호의를 보인 황제는 교회의 지도권을 요구하였으니 이는 이교주의에 있어서 황제는 신으로 숭앙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므롯이 꿈꾸었던 것이고 - 바로 콘스탄틴 대제의 욕망이었다. 이때부터 이교 주의가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도매금으로 혼입되어 들어 왔던 것이다. 앞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도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서 - 니므롯과 같은 욕망을 통해서 출현하게 될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om3623/1567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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